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조선을 휩쓴 전쟁들(2) - 정묘호란, 병자호란

반응형

정묘호란

17세기 초, 명나라의 쇠퇴와 함께 후금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누르하치는 1616년 후금을 건국하고 명나라에 대항을 하며 세력을 키워 나갔다. 후금의 위협에 명나라는 조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후금과 대립하고 싶지 않았던 광해군은 명나라를 도우러 가는 강홍립 장군에게 후금과 되도록 대립하지 말고 상항을 봐서 후금에게 항복할 것을 명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광해군의 외교정책에 신하들은 불만을 품었고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물러나고 인조가 즉위하자 조선은 대외정책을 바꾸어 후금에게 등을 돌리고 명나라와 동맹을 강화하게 된다. 조선의 외교 정책에 불만을 품은 후금은 '전왕 광해군을 위하여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걸고 1627년 1월 아민이 약 3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공하였다. 조선에서는 장만을 도원수삼아 싸웠으나 평산에서부터 후퇴를 거듭, 그 본진이 개성으로 후퇴하였고 인조와 신하들은 후금을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조선의 여러 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후금과 대적하고 보급로를 공격했다. 보급로가 막힌 후금군은 전쟁이 오래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화도에 사신을 보내 교섭을 시도하였다. 결구 후금과 조선은 형제국으로 지내는 조건과 왕자 대신 종실인 원창군을 인질로 보내는 것으로 협의하고 후금군은 돌아갔다.

 

정묘호란 후금 침입로
정묘호란 당시 후금의 침입로(출처: 우리 역사넷)

 

병자호란

정묘호란 이후 후금은 더욱 강해졌다.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더니 마침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황제국이 되었다. 청나라는 이제 조선에 형제의 맹약을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바꾸고 청나라를 섬기기를 요구했다. 명나라를 황제국으로 받들던 조선은 이를 거절했으며 오히려 군사를 일으켜 청나라를 공격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조선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1636년 청나라가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을 '병자호란'이라고 부른다. 청나라의 황제인 태종은 10만 군사를 이끌고 10여 일 만에 한성 근처까지 내려왔다. 당황한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얼마 후 청나라 군은 남한산성을 에워쌌다. 성안에 갇힌 인조와 조선군은 엄청한 병력의 청나라 군대와 더 이상 맞서 싸울 수 없었다. 청나라군은 조선군의 열 배가 넘는 병력이었다. 게다가 조선군은 식량도 두 달 치가 안 되는 양이었다. 겨울의 혹한 추위에 조선의 신하와 병사들은 하나둘 지쳐 갔다. 이때 신하들은 명나라의 의리를 지키고 청나라와 계속 싸워야 한다는 척화론을 주장했던 신하들과 청나라의 요청을 수요하고 화친을 맺자고 주장하는 신하로 나뉘었어요. 인조는 결국 최명길과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삼전도로 나가 청나라에 항복을 했다. 인조는 낮은 신분을 뜻하는 푸른색 옷을 입고 청나라의 태종 앞에서 항복의 의미로 한 번 절하고 세 번씩 땅에 이마를 대는 절을 세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리고 청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섬기겠다고 약속했다.  청나라는 인조의 두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여러 신하들을 볼모로 청나라에 잡아갔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군사적, 경제적 부담과 공녀 차출을 강제하였다. 명라나는 우방국 조선이 청에게 패하자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가다 굴국 1644년 멸망하게 된다. 병자호란 조선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인조의 뒤를 이어 봉림대군이 즉위하여 효종이 됩니다. 효종은 북벌 운동을 추진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붕당 간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과의 군신관계를 맺고, 조공의 부담을 무겁게 져야 했다. 그러나 조선은 청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 기화가 생겼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충격으로 인해 조선의 사림들은 오랑캐인 청에게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북벌 운동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벌 운동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효종의 죽음 이후에 중단되었다.

병자호란 남한산성
남한산성 (출처: 우리 역사넷)

 

 

관련글

2024.06.18 - [한국사] - 조선을 휩쓴 전쟁들(1) - 임진왜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