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한국사

고려 무신 정권 그리고 몽골의 침략 거란과의 전쟁 이후 약 200년간의 평화가 이어지던 고려에 위기가 닥쳤다. 오랫동안 무시당했던 고려의 무신들이 일어나 문신들을 내쫓고 권력을 차지하고 부패를 저질렀다. 차별받던 백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한편으로 초원을 정복하고 세계를 휩쓸던 몽골이 고려에 침략을 시작한 것이다. 차별과 무신의 반란고려의 무신은 나라를 지키는 위중한 일을 담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군대를 이끄는 총사령관 또한 무신이 아닌 문신이 맡았다. 거란을 물리친 서희와 강감찬도 무신 출신이었다. 날이 갈수록 문신들은 무신들을 깔보았고 무신들은 차별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었다. 어느 날 새 임금이 된 의종이 술자리에서 무술 시합을 열었다. 나이가 많은 장군 이소응을 젊은 무신과 겨루게 하였.. 더보기
고려의 문화와 불교 고려는 문벌 귀족의 집권기에 가장 번영했으며 기술력과 아름다움이 뛰어났다. 고려청자가 대표적인 예술품이다. 고려는 벽란도, 금주 등을 통해 해외와도 활발히 교역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다. 고려가 멸망한 뒤에도 한반도 국가들을 '고려'로 불렸고 현재 한국을 코리아(Korea)로 부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조선과 달리 고려는 여성의 이혼을 허용하는 등 나름 개방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삼국사기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1145년경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편찬하였다. 국사 편찬은 왕권 강화의 기념적 사업이며 당시의 정치, 문화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때 고려는 문벌귀족문화가 발달하고 유교와 불교문화가 융합하며 왕조도 안정되었던 시기였다. 삼국사기 외.. 더보기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북쪽에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세력을 키워가는 한편 중국 땅에서 당나라가 멸망하고 송나라가 세워졌다. 거란은 926년 발해를 쓰러뜨리고, 중국 북쪽의 땅을 차지한 후 낙타를 보내는 등 고려와의 교류를 원했다. 하지만 왕건은 이를 거절했다. 고려는 오히려 송나라와 교류하며 거란을 견제했다. 송나라를 차지하고 싶었던 거란은 거란이 송나라를 공격할 때 고려가 거란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고려를 먼저 굴복시키기를 원했다. 거란의 침입과 서희의 담판993년 거란군이 고려를 공격해 왔다. 거란은 옛 고구려의 영토를 내놓고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고려의 서희가 거란의 총사령관 소손녕을 찾아가 협상하였다. 서희는 고려가 거란을 멀리하고 송나라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이에 서희는 압록강 동쪽의 여.. 더보기
고려의 건국, 정치 제도 고려의 건국신라는 말기에 접어들면서 왕이 자주 바뀌고 귀족들 간의 다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지방에서는 호족들이 세력을 키워 갔다. 견훤이 후백제를,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우고 영토를 넓혀 갔다. 궁예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키워 갔으나, 차츰 신하들을 믿지 않고 폭군으로 변해갔다. 이에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이 다른 장군들과 힘을 합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918년 '고려'를 세웠다. 신라는 세력이 약해지고 후백제로부터 더 이상 나라를 지키기 힘들어지자 935년 경순왕 은 고려 왕건에게 신라를 바치게 되었다.  견훤의 후백제와 왕건의 후삼국 통일남쪽 지방에서는 견훤이 세운 후백제가 세력을 떨치며 고려와 신라를 위협했다. 후백제는 신라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견훤은 넷째 아.. 더보기
해동성국 발해 대조영의 발해 건국고구려 멸망 후 요동 지방은 중국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는 고구려인들을 강제로 영주 지방에 살도록 하였다. 영주는 말갈족과 거란족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던 중 거란족 장수가 당나라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에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족 사람들과 함께 698년 지린성의 동모산에 '진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대조영은 이후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와 말갈족까지 모아 세력을 넓히고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니 이로써 대동강을 기점으로 북에는 발해, 남에는 신라가 자리 잡은 남북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조영은 영토를 넓히고 당나라의 침입을 대비했으며 신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진국은 후에 국호를 '발해'로 바꾸게 된다. 문왕과 선왕발해의 지배층 세력은 .. 더보기
통일 신라의 찬란한 불교 유산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주변국들과 더 이상 전쟁이 없었고 인구도 늘어났으며, 불교의 발전으로 금성(경주)은 눈부신 불교문화의 유산들로 채워졌다. 지방 곳곳에 큰 절이 세워지고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발달하였다. 대왕 바위 - 문무왕의 전설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더 이상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에 있는 왜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동쪽 바닷가에 뿌려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신하들은 이를 따라 동해 감포 앞바다의 커다란 바위 아래에 문무왕을 모셨다. 이곳이 바로 대왕 바위로 불리는 문무왕의 무덤이다. 신라인들은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왜로부터 신라를 지켜 준다고 믿으며 살았다. 안압지신라는 통일 후 궁궐 안.. 더보기
철의 나라 가야 가야는 경상도 지방의 낙동강 유역에서 힘을 키우던 작은 나라였다. 열 개가 넘는 나라들이 각자 독립적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가야는 또한 질 좋은 철을 생산하여 다른 나라에 수출한 철의 나라였다. 특히 철로 만든 여러 농기구나 무기들이 훌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에서 나온 김수로낙동강 주변의 가야 지역에서는 왕 대신에 아홉 명의 촌장이 각각 자신들의 부족을 다스리고 있었다. 하루는 아홉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거북의 머리 모양을 닮은 구지봉에 모여 제사를 지다 그때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이 내게 너희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흙을 파고 노래를 부르며 나를 맞이하라." 그 말을 들은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을 테다." 하고 노래를.. 더보기
백제의 등장과 근초고왕 백제는 삼국 중에 가장 먼저 한강 주변의 땅을 차지한 나라이며 가장 일찍 멸망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백제 또한 한반도에 정착한 강한 나라 중 하나였고 특히 왜와 활발한 교류를 하며 우리 문화를 전파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나라이다. 백제의 등장고구려를 세운 주몽에게는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유리가 주몽을 찾아오고 유리가 고구려의 태자가 되었다. 이에 비류는 바닷가 근처 미추홀에, 온조는 한강이 흐르는 위례성에 터를 잡고 나라를 세웠다. 미추홀은 습기가 많고 물이 짜서 농사를 짓기에 부족했다. 이에 비류의 근심이 깊어져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며 이에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온조에게 의탁하게 된다. 온..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