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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 정치 제도 고려의 건국신라는 말기에 접어들면서 왕이 자주 바뀌고 귀족들 간의 다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지방에서는 호족들이 세력을 키워 갔다. 견훤이 후백제를,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우고 영토를 넓혀 갔다. 궁예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키워 갔으나, 차츰 신하들을 믿지 않고 폭군으로 변해갔다. 이에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이 다른 장군들과 힘을 합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918년 '고려'를 세웠다. 신라는 세력이 약해지고 후백제로부터 더 이상 나라를 지키기 힘들어지자 935년 경순왕 은 고려 왕건에게 신라를 바치게 되었다.  견훤의 후백제와 왕건의 후삼국 통일남쪽 지방에서는 견훤이 세운 후백제가 세력을 떨치며 고려와 신라를 위협했다. 후백제는 신라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견훤은 넷째 아.. 더보기
해동성국 발해 대조영의 발해 건국고구려 멸망 후 요동 지방은 중국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는 고구려인들을 강제로 영주 지방에 살도록 하였다. 영주는 말갈족과 거란족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던 중 거란족 장수가 당나라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에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족 사람들과 함께 698년 지린성의 동모산에 '진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대조영은 이후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와 말갈족까지 모아 세력을 넓히고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니 이로써 대동강을 기점으로 북에는 발해, 남에는 신라가 자리 잡은 남북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조영은 영토를 넓히고 당나라의 침입을 대비했으며 신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진국은 후에 국호를 '발해'로 바꾸게 된다. 문왕과 선왕발해의 지배층 세력은 .. 더보기
통일 신라의 찬란한 불교 유산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주변국들과 더 이상 전쟁이 없었고 인구도 늘어났으며, 불교의 발전으로 금성(경주)은 눈부신 불교문화의 유산들로 채워졌다. 지방 곳곳에 큰 절이 세워지고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발달하였다. 대왕 바위 - 문무왕의 전설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더 이상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에 있는 왜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동쪽 바닷가에 뿌려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신하들은 이를 따라 동해 감포 앞바다의 커다란 바위 아래에 문무왕을 모셨다. 이곳이 바로 대왕 바위로 불리는 문무왕의 무덤이다. 신라인들은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왜로부터 신라를 지켜 준다고 믿으며 살았다. 안압지신라는 통일 후 궁궐 안.. 더보기
철의 나라 가야 가야는 경상도 지방의 낙동강 유역에서 힘을 키우던 작은 나라였다. 열 개가 넘는 나라들이 각자 독립적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가야는 또한 질 좋은 철을 생산하여 다른 나라에 수출한 철의 나라였다. 특히 철로 만든 여러 농기구나 무기들이 훌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에서 나온 김수로낙동강 주변의 가야 지역에서는 왕 대신에 아홉 명의 촌장이 각각 자신들의 부족을 다스리고 있었다. 하루는 아홉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거북의 머리 모양을 닮은 구지봉에 모여 제사를 지다 그때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이 내게 너희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흙을 파고 노래를 부르며 나를 맞이하라." 그 말을 들은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을 테다." 하고 노래를.. 더보기
백제의 등장과 근초고왕 백제는 삼국 중에 가장 먼저 한강 주변의 땅을 차지한 나라이며 가장 일찍 멸망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백제 또한 한반도에 정착한 강한 나라 중 하나였고 특히 왜와 활발한 교류를 하며 우리 문화를 전파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나라이다. 백제의 등장고구려를 세운 주몽에게는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유리가 주몽을 찾아오고 유리가 고구려의 태자가 되었다. 이에 비류는 바닷가 근처 미추홀에, 온조는 한강이 흐르는 위례성에 터를 잡고 나라를 세웠다. 미추홀은 습기가 많고 물이 짜서 농사를 짓기에 부족했다. 이에 비류의 근심이 깊어져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며 이에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온조에게 의탁하게 된다. 온.. 더보기
고구려의 건국과 광개토대왕 고구려의 건국고조선이 멸망한 다음 한반도에는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지배하려고 하였다. 이 무렵 주변에서 여러 나라들이 새로 생기게 되었다. 만주 지역에는 고구려와 부여가 한반도 남쪽에는 삼한 그리고 동쪽에는 옥저와 동예가 세워졌다. 이 중 만주 땅을 중심으로 부여가 세력을 키웠다. 부여는 기원전 3세기부터 약 600년 동안 명맥을 이어갔다. 부여인 중에서 주몽이라는 인물이 사람들을 이끌고 졸본 지역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바로 고구려다. 이후 고구려는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궁궐을 세우며 국력을 키웠다. 곧이어 옥저와 동예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주둔하던 중국 한나라군까지 몰아내면서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는다.  고구려의 영토확장과 광개토대왕세종 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광개토 대왕.. 더보기
사로국에서 신라로 신라의 탄생지금의 경주 지역에 사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사로국은 여섯 마을로 이루어졌으며 촌장들이 각자 마을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촌장이 길을 가다 우물가 앞에서 자주색 알을 발견하였고 며칠 후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사로국 사람들은 박 모양의 알에서 나왔다 하여 박 씨 성을, 세상을 밝힌다는 뜻으로 혁거세라고 이름을 지었다. 혁거세가 청년이 되자 여섯 촌장은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를 사로국의 왕으로 추대하였다.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발전하였다. 356년 내물왕 때부터는 김 씨가 박 씨와 석 씨를 몰아내었으며 이후 김 씨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이후 왕의 힘이 강해졌으며 '마립간'이라는 왕의 호칭이 생겼다. '마립'은 신라 방언으로 말뚝을 의미하였으며 말뚝은 협조(자리.. 더보기
서대대울산 등산 대모산 서대대울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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